어지럼은 몸에서 시작됩니다 — 담, 기운, 피,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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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왜 어지러운 건가요?” 어지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반드시 나오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한 가지로 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어지럼은 몸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어긋났을 때 생기는데, 그 어긋남은 여러 자리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담이 껴서 온 분, 기운이 모자라 온 분, 피가 모자라 온 분, 열이 위로 떠서 온 분이 모두 같은 ‘어지럼’을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이 어지럼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 순서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5편 중 3번째입니다.

어지럼은 균형이 어긋난 상태입니다
사람이 똑바로 서 있으려면 3곳에서 들어오는 정보가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 귀 안쪽에서 느끼는 것, 발바닥과 관절에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이 3가지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면 몸은 혼란스러워집니다. 그 혼란이 어지럼입니다. 배를 타면 어지러운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눈은 “가만히 있다”고 하는데 귀는 “움직이고 있다”고 하니 몸이 헷갈리는 것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봅니다. 머리로 맑은 기운이 제대로 올라가고 있는가입니다. 올라갈 것이 모자라거나, 올라가는 길이 막혔거나, 엉뚱한 것이 대신 올라가면 머리가 어지러워집니다. 아래 4가지 갈래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담이 껴서 오는 어지럼
가장 흔한 갈래입니다. 여기서 담은 몸 안에 눅진하게 고인 노폐물을 말합니다. 속이 제 일을 못 하면 먹은 것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이렇게 남습니다.
이 담이 위로 올라가 머리를 덮으면 무겁고 뿌옇게 어지럽습니다. 도는 것보다 “머리에 뭔가 씌워진 것 같다”는 표현을 많이 쓰십니다.
이런 분들은 어지럼 말고도 겹치는 것이 있습니다. 속이 더부룩하고, 아침에 유독 무겁고, 몸이 잘 붓고, 설태가 두껍게 끼어 있습니다. 기름진 것을 드신 다음 날 더 심해지십니다.
이 갈래는 손대면 비교적 빨리 달라집니다. 무거운 것을 걷어내는 치료는 반응이 빠른 편이라, 2~3주 안에 “머리가 가벼워졌다”는 말씀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운이 모자라 오는 어지럼
올려 보낼 힘이 모자란 경우입니다. 몸에서 만들어지는 기운이 적으니 머리까지 닿지를 못합니다.
이 어지럼은 쓰고 나면 심해집니다. 오전에는 그럭저럭 지내시다가 오후에 무너지고, 일을 하고 나면 아찔해지십니다. 일어설 때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도 대개 이쪽입니다.
말씀도 조용해지십니다. 말수가 줄고, 계단 몇 개에 숨이 차고, 밥을 조금만 늦게 드셔도 힘이 쭉 빠집니다. 손발이 차고 땀이 쉽게 납니다.
크게 앓고 나신 뒤, 산후, 오래 잘 못 드신 뒤에 이 어지럼이 옵니다. 그래서 저희는 어지럼이 시작된 무렵에 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꼭 여쭙습니다.

피가 모자라 오는 어지럼
올라갈 것이 모자란 또 하나의 경우입니다. 기운이 ‘밀어 올리는 힘’이라면 피는 머리를 적셔 주는 것입니다.
이 어지럼은 눈과 함께 옵니다. 눈앞이 침침하고 뻑뻑하며, 어지러울 때 눈앞에 별 같은 것이 반짝이기도 합니다. 얼굴빛과 입술빛이 옅고 손톱이 잘 갈라집니다.
여성분 중에는 생리 전후로 유독 어지러워지는 분이 많으신데 대개 이쪽입니다. 잠을 자도 꿈이 많고 자주 깨십니다.
이 갈래는 담이 낀 쪽보다 시간이 더 걸립니다. 걷어내는 일이 아니라 채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채워지면 어지럼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잠과 낯빛이 함께 달라집니다.
기운이 모자란 쪽과 피가 모자란 쪽은 겉으로 비슷해 보여서 헷갈리기 쉽습니다. 나누는 기준을 하나만 말씀드리면 기운 쪽은 “쓰고 나면” 심해지고, 피 쪽은 “눈이 같이” 힘듭니다. 물론 2가지가 함께 있는 분도 많습니다.

열이 위로 떠서 오는 어지럼
앞의 2가지와는 반대입니다. 모자라서가 아니라 엉뚱한 것이 위로 치밀어 올라 어지러운 경우입니다.
오래 참고 지내시거나 신경 쓸 일이 이어지면 그 기운이 아래에 머무르지 못하고 위로 뜹니다. 그러면 머리가 화끈하면서 어지럽고 뒷목이 뻣뻣하게 당깁니다.
이런 분들은 얼굴이 잘 달아오르고, 귀에서 소리가 나고, 눈이 충혈되고, 자다가 자주 깨십니다. 화가 나거나 긴장한 직후에 확 어지러워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이 잦으신 분이 많습니다. 화병과 어지럼이 한 몸에 같이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 갈래에서 조심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지럽다고 무조건 기운을 채우는 약을 드시면 오히려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위로 뜬 것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밀어 올리는 것을 더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어지럼이라도 반대로 손대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이 대목입니다.

겹쳐 있는 분이 훨씬 많습니다
지금까지 4가지 갈래를 나누어 말씀드렸지만, 실제 진료실에서는 한 가지만 있는 분보다 2~3가지가 겹쳐 있는 분이 훨씬 많습니다.
흔한 조합이 있습니다. 속이 무거워 담이 끼면 잘 드시지 못하고, 잘 못 드시니 기운이 빠집니다. 기운이 빠지면 잠이 얕아지고, 잠이 얕아지면 열이 위로 뜹니다. 한 바퀴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하는 일은 어느 것이 먼저 시작됐는지를 찾아 그 자리부터 푸는 것입니다. 겹쳐 있는 것을 한꺼번에 다 건드리면 오히려 더디 갑니다.

정리하면
어지럼은 귀 한 곳의 문제로만 생기지 않습니다. 담이 껴서, 기운이 모자라서, 피가 모자라서, 열이 위로 떠서 — 시작되는 자리가 서로 다릅니다.
어느 자리에서 시작됐는지에 따라 걷어내는 순서가 반대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어지럼만 보지 않고 잠, 속, 낯빛, 설태, 맥을 함께 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어지럼을 오래 두면 몸에 무엇이 생기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넘어지는 일보다 더 조용히 진행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5편 중 4번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