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못 자면 불면증일까요 — 기준과 자가진단
“하루에 몇 시간은 자야 하나요.” 잠 때문에 오신 분들이 가장 먼저 여쭙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질문에 숫자로 바로 답을 드리지 않습니다. 시간을 말씀드리는 순간 그 숫자가 또 하나의 숙제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어디까지가 잠을 설친 밤이고 어디부터가 불면증인지 그 경계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5편 중 첫 번째입니다.

시간이 아니라 낮이 기준입니다
6시간을 주무시고도 하루가 멀쩡한 분이 계시고, 8시간을 채우고도 종일 몸이 무거운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잠을 볼 때는 잔 시간보다 다음 날 낮이 어떠신지를 먼저 봅니다.
-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몸이 무겁습니다
- 오후만 되면 머리가 멍하고 집중이 흩어집니다
- 사소한 일에 예민해지고 짜증이 먼저 올라옵니다
- 낮에 자꾸 졸리고, 앉으면 눈이 감깁니다
밤에 오래 뒤척이셨더라도 낮이 멀쩡하시다면 그건 그분에게 맞는 잠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시간은 충분히 채우셨는데 낮이 무너진다면, 시간이 아니라 잠의 질을 살펴야 합니다. 불면증이라는 말에는 원래 “낮이 힘들다”는 조건이 함께 붙어 있습니다.

수면 기준은 30분
그래도 기준이 있어야 판단을 하실 수 있겠지요. 실제로 쓰는 기준은 어렵지 않습니다. 30분이라는 숫자가 3군데에 나옵니다.
- 눕고 나서 30분 — 불을 끄고 30분이 지나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 깨고 나서 30분 — 자다 깬 뒤 다시 잠들기까지 30분이 넘게 걸립니다. 여러 번 깨신 시간을 모두 합쳐 30분이 넘는 경우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 일어나려던 시각보다 30분 — 원하시는 시각보다 30분 이상 일찍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합니다
여기에 2가지를 더 봅니다. 일주일에 3일 이상 그러신지, 그리고 3개월 넘게 이어지는지입니다. 위의 3가지 중 하나에 해당하시면서 주 3일, 3개월을 넘기면 만성 불면증으로 봅니다.

며칠과 3개월은 다릅니다
시험을 앞두고, 이사를 하고, 가까운 분이 편찮으셔서 며칠 잠을 설치는 것은 몸이 정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대개 그 일이 지나가면 잠도 함께 돌아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계기는 사라졌는데 잠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잠을 못 잔 것이 아니라, 못 자는 방식이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저녁만 되면 오늘 밤은 잘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올라오고, 그 걱정이 다시 잠을 밀어냅니다. 잠이 걱정의 대상이 되어 버린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는 3개월이라는 시간을 중요하게 봅니다. 며칠 설친 밤은 지나가지만, 3개월을 넘기면 잠 자체보다 잠을 둘러싼 상태를 함께 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해 보시는 자가진단
지금 바로 확인해 보실 수 있도록 5가지로 줄여 드리겠습니다. 지난 1개월을 떠올리며 세어 보세요.
- 잠드는 데 30분 이상 걸립니다
- 중간에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렵습니다
- 새벽에 너무 일찍 깨어 버립니다
-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피곤합니다
- 낮 동안 집중력이 떨어지고 예민해집니다
2가지 이상 해당하신다면 한 번 들여다보실 때가 된 것입니다. 불면은 오래 두실수록 풀기가 더뎌집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쌓이면 침대에 눕는 일 자체가 부담이 되고, 그때부터는 잠보다 그 부담을 먼저 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진료실에서는 “잘 못 잔다”는 말씀만으로는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대개 실제보다 더 못 주무셨다고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뒤척인 시간은 길게 남고 잠든 시간은 기억에 남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시기 전 7일쯤, 누우신 시각과 일어나신 시각, 밤에 깬 횟수만 달력 귀퉁이에 적어 오시면 도움이 큽니다. 적는 동안 스스로도 규칙이 보이십니다.

주말에 몰아 자면 될까요
주중에 못 주무신 만큼 토요일 아침에 늦게까지 채우시는 분이 많습니다. 당장 그날은 개운하실 수 있지만, 잠에는 이자가 붙지 않습니다. 못 잔 잠을 나중에 그대로 돌려받는 구조가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일어나는 시각이 2시간 넘게 밀리는 일입니다. 몸 안의 시계는 아침 빛을 보고 하루를 맞추는데, 주말에 그 시각이 밀리면 시계도 함께 밀립니다. 그래서 일요일 밤에 유난히 잠이 오지 않고, 월요일 아침이 유난히 무겁습니다. 시차가 있는 곳에 다녀오신 것과 비슷한 상태가 매주 반복되는 셈입니다.
주말에 더 주무시고 싶으시면 1시간 안쪽으로만 늦추시고, 대신 낮에 잠깐 눈을 붙이시는 편이 낫습니다. 낮잠은 오후 3시 이전에 20분까지가 좋습니다. 그보다 길어지면 깊은 잠까지 들어갔다 나오게 되어 일어나도 더 무겁고, 그날 밤 잠이 뒤로 밀립니다.

8시간을 채우려다 잠을 놓칩니다
8시간은 평균일 뿐 모두에게 맞는 숫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숫자를 지키려고 애쓰시다가 오히려 잠을 놓치시는 분이 많습니다.
못 잘까 봐 평소보다 일찍 누우십니다. 잠은 아직 오지 않는데 자리에 있는 시간만 길어집니다. 그렇게 뒤척인 시간이 쌓이면 침대가 잠자는 자리가 아니라 잠을 기다리며 애태우는 자리로 기억됩니다. 다음 날은 못 잔 것을 메우려고 늦게까지 누워 계시고, 그러면 그날 밤은 더 늦게 잠이 옵니다.
지금 한 가지만 바꾸신다면 이것을 권해 드립니다. 일찍 눕지 마시고, 일어나는 시각을 고정하세요. 잠은 억지로 늘릴 수 없지만 일어나는 시각은 정하실 수 있고, 그 시각이 일정해야 몸이 밤을 다시 배웁니다.

정리하면
잠은 시간으로 재는 것이 아니라 낮으로 재는 것입니다. 눕고 30분, 깨고 30분, 일어나려던 시각보다 30분 — 이 3가지 중 하나가 주 3일 이상 3개월 넘게 이어지고 낮이 힘드시다면 살펴보실 때입니다.
기준을 확인하셨다면 다음은 결을 나눌 차례입니다. 못 드는 잠과 자꾸 깨는 잠, 새벽에 일찍 깨는 잠은 이름은 같은 불면이어도 뒤에 있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다음 편에서는 불면증의 3가지 얼굴을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