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은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옵니다 — 가슴, 목, 머리, 잠
화병은 마음의 병이라고들 하십니다. 그런데 진료실에 오셔서 실제로 꺼내시는 이야기는 대부분 몸 이야기입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걸리고, 머리가 아프고,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하십니다.
마음이 힘든 이야기는 오히려 한참 뒤에야 나옵니다. 그래서 화병은 마음으로 앓는 병이 아니라 몸으로 앓는 병에 가깝습니다. 오늘은 화병이 몸의 어디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하나씩 짚어 드리겠습니다. 5편 중 2번째입니다.

가슴에서 치밀어 오릅니다
화병에서 가장 특징적인 신호입니다. 단순히 답답한 것과는 다릅니다. 명치 아래에서 무언가가 목 쪽으로 밀고 올라오는 느낌입니다.
많은 분이 이것을 “울컥한다”는 말로 표현하십니다. 억울했던 일이 떠오르면 바로 올라오고, 아무 일이 없어도 저녁 무렵이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손을 가슴에 얹고 계신 분도 계시고, 저도 모르게 가슴을 두드리게 된다는 분도 계십니다.
이 느낌은 화병이 아직 몸 위쪽에 머물러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이 단계에서 오시면 손을 대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목에 뭔가 걸린 느낌
“목에 매실 씨 같은 게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이 증상에 오래전부터 이름이 있었습니다. 삼켜지지도 않고 뱉어지지도 않는다는 뜻의 이름입니다.
특징이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는 오히려 괜찮고, 가만히 있을 때 더 느껴집니다. 실제로 무엇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목 주변 근육이 긴장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비인후과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고 들으신 분이 많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이 증상이 있으면 목소리가 자주 잠기거나, 침을 자꾸 삼키게 되거나, 헛기침이 늘기도 합니다. 신경 쓰이는 일이 있는 날에 유난히 심해졌다가, 마음이 편한 날에는 하루 종일 잊고 지내기도 합니다. 증상의 세기가 그날의 마음 상태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이 증상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머리로 올라오는 두통
화병의 두통에는 결이 있습니다. 아침에 개운하게 시작했다가 오후로 갈수록, 특히 속상한 일이 있고 나면 뒤통수나 관자놀이로 올라옵니다.
아프기 전에 먼저 느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뒷목이 뻣뻣해지고, 어깨가 굳고,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그러고 나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합니다. 진통제를 드시면 잠깐 가라앉지만 다음에 또 속상한 일이 있으면 똑같이 올라옵니다.
아픈 자리도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뒷목에서 뒤통수로 뻗치거나, 관자놀이가 욱신거리거나, 머리 전체가 조이는 것처럼 무겁습니다. 머리가 맑지 않고 늘 안개가 낀 것 같다고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이런 두통을 두통 자체로만 보면 계속 제자리입니다. 진통제는 올라온 것을 잠시 눌러 줄 뿐 올라오는 길을 바꾸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올라오는 열을 내려 주면 두통이 함께 줄어드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얼굴은 뜨겁고 손발은 찹니다
화병 환자분들을 만져 보면 거의 예외 없이 같은 모습입니다. 얼굴과 가슴은 뜨거운데 손발은 차갑습니다.
몸 전체에 열이 많아서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있는 열이 위로만 몰려 있고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겨울에도 얼굴은 화끈거리는데 발은 시려서 양말을 신고 주무십니다.
여름이면 더 힘들어지시고, 사람이 많은 곳이나 답답한 자리에 있으면 훅 올라옵니다. 얼굴만 붉어지는 것이 아니라 땀이 얼굴과 목에만 나는 분도 계십니다.

누우면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화병으로 오신 분들이 가장 많이 힘들어하시는 대목입니다. 낮에는 바빠서 잊고 지내다가, 불을 끄고 자리에 눕는 순간 생각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낮에 들었던 말이 떠오르고, 그 말에 제대로 대꾸하지 못한 것이 떠오르고, 그러다 몇 년 전 비슷했던 일까지 딸려 나옵니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어느새 새벽입니다.
이때 많은 분이 스스로를 탓하십니다. “쓸데없는 생각인 걸 아는데도 멈춰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낮 동안 깨어 있게 만드는 힘이 밤이 되어도 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켜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몸은 분명히 피곤한데 머리만 또렷합니다. 억지로 자려고 하면 오히려 가슴이 다시 뜁니다. 이것은 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낮 동안 눌러 두었던 감정이 밤에야 올라오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화병을 그대로 두면 불면이 함께 오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두근거림과 한숨
가만히 있는데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집니다. 특히 누웠을 때 베개로 심장 소리가 전해지는 분이 많습니다. 놀랄 일이 없었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 두근거림 때문에 또 불안해지십니다.
한숨도 마찬가지입니다. 쉬려고 쉬는 것이 아니라 쉬고 나서야 쉬었다는 것을 아십니다. 옆에서 “왜 자꾸 한숨이냐”는 말을 듣고서 알아차리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숨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막힌 것을 몸이 스스로 뚫으려는 움직임에 가깝습니다. 다만 그 한숨이 하루에 몇 번씩 반복된다면 몸이 계속 답답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2가지가 함께 있으면 몸이 견디는 힘이 꽤 떨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두근거림과 한숨은 조용한 신호라 그냥 넘기시기 쉬운데, 오히려 가장 먼저 나타나서 가장 늦게까지 남는 증상입니다.

정리하면
화병은 마음으로만 앓는 병이 아닙니다.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고, 목이 걸리고, 오후가 되면 머리로 올라오고, 얼굴은 뜨거운데 손발은 차고, 누우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유 없이 두근거립니다. 이 신호들은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뿌리에서 나옵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 뿌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참은 감정이 어떻게 기운을 막고, 막힌 것이 어떻게 열로 바뀌어 위로만 올라가는지 — 화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순서대로 짚어 드리겠습니다.
